젊은목사의편지

21-01-24 23:25

소박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

한덕진
댓글 0
Atachment
첨부파일 DATE : 2021-01-24 23:25:24
소박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

나는 1994년 즈음에 신학교에서 장애아동들을 처음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을 장애인들과 함께 해왔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가장 귀한 영혼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가장 큰 축복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1999년부터는 지금 내가 사역하고 있는 평안밀알을 개척해서 20년이 좀 넘는 시간동안 장애인들을 만나오고 있다.

장애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이기에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들을 해 줄 수 있기를 바람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배려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해보면서 나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대단한 것은 아니고 밀알의 장애단원들이 하는 전화는 무조건 받아주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많고,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만날 수 없을 때는 전화를 가지고 오랜 시간동안 통화를 하기도 하는데, 장애인들은 그 어떤 사람과 맘을 나누는 통화를 할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전화를 받아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소박한 배려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후로 매일처럼 걸려오는 전화를 친절하게 받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다.

사실 밀알의 장애 단원들이 전화를 하면 그 전화는 그렇게 긴 경우는 별로 없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가족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하게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내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 대부분 이었고, 다른 분들 역시 상처받은 것을 누구에겐가 이야기 하고 싶은데 마땅히 표현할 곳이 없었기에, 전화를 통해서 푸념을 좀 늘어놓다가 끊곤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살이에 익숙해진 나에게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는 나의 일상에 찾아온 바쁨이라는 손님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하루의 시간을 지나보면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서 그 시간 안에 무엇을 했는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다보니 일하는 중에 장애 가족들로 부터 오는 전화를 받는 것을 보류하거나 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생기고 있다. 무슨 하고 싶은 말이 있을텐데 자주 받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장애 친구들에게 미안한 일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하루에 전화를 수십통을 하는 친구에 대해서는 전화 수신을 차단해 놓은 만행(?)과 같은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사실 내가 장애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엄청난 일은 별로 없기에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장애인선교와 복지의 사역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여러가지 챙길 것들이 많아지고, 신경써야할 것들이 많아지다 보니 문득 장애인들과의 일상을 패스하는 것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어버린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밀알의 식구들을 매주 우리 집에 초청해서 식사를 대접하던 일들, 장애 가족들을 태우고 10년 이상을 교회에 데리고 가면서 주일을 섬겼던 이야기, 기회가 될 때마다 가정에 방문해서 피자와 치킨을 나누었던 일들, 그리고 시간만 되면 가정들에 찾아가서 그들과의 살을 나누었던 것들, 오래만에 만나고 싶은 장애인에게 전화해서 나오라고 해서 함께 식사를 나누었던 일들이 정말 오랜 추억처럼 느껴지는 이유들은 무엇 때문일까?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은 단 하나도 그들을 위하지 않는 것을 없다. 나는 여전히 장애인들의 선교와 복지를 위해서 일하고 있고, 교회조차도 장애인교회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그들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도 오늘은 코로나를 겪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서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나는 그들과 얼마나 삶을 함께하고 있는가?’ 나는 오늘 이 질문에 대해서 유독 자신이 없다.
장애인들과의 평상을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립다. 유독 오늘은 소박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39-40]

젊은목사의편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 소박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 첨부파일 한덕진 21.01.24 1096
131 코로나19 사랑 이야기 첨부파일 한덕진 20.04.16 1172
130 자기만을 이야기하지 않는 축복을 누리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첨부파일 한덕진 20.01.28 1308
129 6살짜리 대전밀알을 만나다. 첨부파일 한덕진 20.08.08 1375
128 어머니 장애도 품는 것입니다. 한덕진 18.10.05 1900
127 세상이 보기에 어리석음을 선택하는 복 인기글첨부파일 한덕진 18.03.20 2103
126 단지 형제와 자매된 마음이면 족합니다. 인기글첨부파일 한덕진 16.08.23 2239
125 자녀의 기쁨 만큼 아픔을 경험하는 어머니들을 위하여 인기글 한덕진 17.03.21 2278
124 객관적인 사랑을 위한 가능성 인기글첨부파일 한덕진 16.05.17 2285
게시물 검색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