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07-10-06 12:48

친척들이 나보고 정신병원에 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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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에 관한 좋은 글이라 한번 읽으시길 바라면서 올려 놓습니다. 이분들 처럼 장애인을 위해 섬기는 귀한 일들이 넘처나길 기도합니다.

▲ 지난 2일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 만난‘젓갈 할머니’유양선씨. 1975년부터 이 시장에서 젓갈 장사를 해온 유씨는“죽을 때까지 돈을 벌어서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 왼쪽부터 KBS‘ 사랑의 리퀘스트’를 통해 270억원을 기부한 고(故) 강태원씨, 건국대학교에 6억원 기부한 이순덕씨, 충남대에 50억원 기부한 고(故) 이복순씨의 아들 임채훈씨.


수백만 원에서부터 수백억 원까지 기부 금액은 다르지만 어렵사리 모은 평생의 재산을 사회에 내놓은 기부자들. 그런데 이들에 대한 관심은 언론에 보도되는 그 순간뿐,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잊혀진다. 그들은 기부 이후 어떻게 살고 있을까?

◆“기부도 천성이겠지”

서울 화양동 건국대학교 뒤편 이순덕(80) 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20년 넘게 건국대 앞에서 담배 가게를 운영하며 모은 6억여원을 건국대에 기부한 ‘건대 할머니’다.

세를 놓은 1층 식당을 지나 2층 가정집 안으로 들어서자 할머니는 “어서 들어와. 할 얘기 없다는데 뭘 여기까지 왔어”라며 기자를 반겼다. 연한 베이지색 블라우스와 면바지, 까맣게 염색한 머리는 짧게 잘라 가지런히 옆으로 빗어 넘겼다. “파킨슨병을 앓고 계시다”라는 학교 관계자의 말처럼 문을 여는 손이 가느다랗게 떨렸지만, 발음은 분명했고 눈동자도 또렷했다.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는 작은 방에는 커다란 환자용 침대, 작은 텔레비전 한 대, 그리고 의자 하나만 덩그렇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조금 있다가 약 먹어야 하니까 점심 챙겨 먹고. 졸리면 자고. 밤에는 드라마 보고, 뉴스도 보고…. 그럼 하루 가는 거지.” 할머니는 한 달에 두 번 병원에 가는 것 말고는 집 밖 출입을 삼간다고 했다. 행사 참석 차 건국대를 찾는 것을 제외하면 집 근처 병원을 다녀오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다.

기부 이후, 일주일에 3~4번 정도 ‘이순덕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 찾아온다. 하루 종일 조용한 집이지만 학생이 찾아올 때만 활기를 띤다.

“지금 생각해도 주길 잘했어. 자식들이나 친척들에게 남겨줘야 무슨 소용이 있어. 학생들 공부시키는 게 제일 낫지. 애들도 찾아오고, 얼마나 좋아. 학생들이 오면 얘기도 많이 듣고, 또 많이 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고 그래.”

학생들 이야기가 시작되자, 할머니의 말이 아이처럼 빨라졌다. 가진 돈을 모두 기부했는데, 가족이나 친척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했다. 할머니 목소리가 다시 가라앉았다.

“남편 전처가 낳은 아들 공부 다 시키고, 또 그 손자 둘을 생선 가시 하나하나 발라가며 초등학교 때까지 키웠는데, 이젠 잘 안 오네. 다들 바쁘니까 어쩔 수 없겠지. 그래도 학생들이 찾아오니까….”

애써 말을 잇는 그녀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같은 톤으로 사촌들에 대해서도 서운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젓갈 할머니’ 유양순씨 아직도 새벽 6시면 시장으로

“내가 집을 대학에 준다니까 정신병원에 가야 한대잖아. 독방에 보내야 한다고. 정신병원은 그렇다 쳐도 독방이라니…. 서러웠어. 사촌 가족들이 아프다면 내가 돈도 보내주고 그랬는데…. 섭섭하지.”

2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할머니의 마음에 남은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 듯했다.

이씨가 지난해 1월 건국대에 기부한 현금 2억원은 북한 황해도의 고향에 남겨두고 온 두 여동생을 위해 모은 돈이었다. “원래 동생들 주려고 모아놓은 돈이었어. 그런데, 내가 늙어서 이제 다 죽게 생겼는데 만날 수 있다는 희망도 없잖아. 그래서 학교에 주기로 했어. 필요한 사람에게 줘야지.”

할머니는 지금도 계속 돈을 모으고 있다. 살고 있는 건물의 임대료를 아직 할머니가 받고 있는 것. 건물을 기부받은 건국대 측이 “돌아가실 때까지 생활비도 필요하실 테니 할머니께서 관리하시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생을 아끼고 쪼개며 저축해왔던 습관은 그대로였다. 할머니는 그렇게 모은 돈을 다른 이들에게 기부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이번에는 소년소녀 가장들을 좀 도와주려고.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겠어. 나야 뭐 어떻게든 남들한테 폐 안 끼치고 살 형편은 되잖아. 아마 이것도 천성이겠지.”




◆기부 이후, 그들의 삶은?

지난 3월 전남대에 시가 10억원 정도의 땅 600평(약 1980㎡·광주 남구 주월동)을 기부한 이순례(84) 할머니. 할머니는 이미 10년 전부터 기부를 결심했고, 자식들도 찬성했다. 기부 당시 “어차피 8남매 중 어릴 때 먼저 저세상으로 떠난 둘째 딸과 막내아들 교육비로 쓸 돈이었는데, 기부하게 돼 기쁘다”며 “내 자식 대신 다른 집 자식이라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이씨의 남은 6남매 중 아들 셋은 전남대 의대, 수의대, 법대를 졸업했다.

이순례 할머니는 기부 이후 지난 6월부터 병원에 입원해 있다. 수년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아 병원 신세를 자주 졌지만, 땅을 기부한 뒤 병세가 더욱 나빠졌다. 아들 김정수(54)씨는 “어머니께서 한참 전부터 몸이 안 좋으시긴 했지만 기부를 결정하신 이후로 상태가 더 안 좋아지셨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순례 할머니는 기부 결정 이후, “할 일을 다했다. 이제 나는 더 할 일이 없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지금도 기부 얘기가 나오면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다. “정말 잘 줬지. 잘 줬지. 잘 줬어”라고 되뇌며, 자식들에게도 “잘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할머니는 지난 1일 마지막 남아 있던 집까지 노인복지시설에 기부했다.

아들 김씨는 “어머니가 그것까지 놓아버리면 더 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어 끝까지 기부를 말렸다”며 “하지만 어머니의 소원이시니 정신이 맑으실 때 기부하고, 그걸 기억하시도록 들어드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25년째 전국 초중고교와 대학에 3억원어치 도서 기증, 1998년 한서대에 10억원 상당의 4층 상가와 임야 기증, 지난해 9월 또다시 한서대에 제주도의 땅 1500여평(약 4960㎡·1억원 상당) 기부한 유양선(75)씨. 1975년부터 지금까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젓갈을 팔고 있다.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젓갈 드럼통과 씨름했던 할머니는 기력이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요즘도 새벽 6~7시면 시장에 나와 밤늦도록 가게를 지킨다. 진열된 젓갈 뒤 나무 의자에 앉아 잠시 TV를 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손님을 부르고, 흥정하고, 젓갈을 퍼 담느라 진을 빼야 한다.

지난 2일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유양선 할머니를 만났다. 기부 직후 그녀 주변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에 투자해라.” “좋은 땅이 있다.” “우리 단체를 도와달라.” “돈 좀 빌려달라.”…. 이씨는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먹고 죽을 것도 없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자꾸 사람들을 경계하게 됐고, 그 바람에 지금 할머니 주변에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 몇몇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추석에도 할머니는 방 안에 누워 홀로 지냈다. 하루 쉬는 토요일에도 온종일 잠만 자는 바로 그 방이다. 집까지 사주고 시집 보낸 딸도 요즘은 연락이 거의 없다고 했다.

기부 할머니로 유명한 그녀지만 이전이나 지금이나 생활은 별반 변화가 없다. 장사도 이전 그대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충남 서산의 한서대에서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 받는다는 점이다. 몸이 불편하거나, 며칠 푹 쉬고 싶을 때면 한서대에 연락해 간단한 무료 진료와 수일간의 요양을 즐긴다. 학교 측에서는 차를 보내 할머니를 모셔 간다. 할머니의 유일한 호사다.

이처럼 언론 인터뷰에 흔쾌히 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끝까지 언론을 피하는 사람도 있다. 2002년 태풍 루사, 2003년 태풍 매미 당시 1억원씩 모두 2억원을 성금하고,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30억원씩 60억원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기부한 이남림(61)씨는 언론과의 접촉을 일체 거절하고 있다. 기부 단체에는 “내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싫다”고만 전한다.
이씨는 남대문 시장에서 안경 도매로 번 돈으로 1984년 용인 상현동 지역의 땅을 사들였다. 용인지역 아파트 건설 붐이 일면서 2005년 이 땅이 거액에 팔리게 되자 “이 돈은 내 것이 아니다”며 방송국에 30억원을 기부했다. 지난해 말에는 광교신도시로 나머지 땅 일부가 편입되어 보상금이 나오자 다시 30억원을 내놓았다. 그동안 각종 언론매체들이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이씨는 물론 그의 자녀들은 아예 언론과의 접촉 자체를 피하고 있다.

지난 5월 외국어대학교에 14억원 정도의 땅을 기부한 조명덕(74)씨, 한국복지재단과 연탄은행 등에 23억원을 기부해 ‘사랑의 연탄천사’로 불리는 송부금(68)씨, 2002년 가톨릭대에 10억원 상당의 건물과 예금통장을 기부한 윤정혜(87)씨 등도 “더 이상 언론에 언급되고 싶지 않다”며 취재 요청을 거부했다.

이외 세상을 떠난 기부자들도 많았다. 1999년 5월 식모살이와 행상을 해 모은 돈 10억원을 고려대학교에 기부한 최병순씨, 2002년 10월 가톨릭학원에 평생 운영해온 하숙집 건물(당시 15억원 상당)을 기부한 김경임씨 등은 기부 후 1~2년 안에 숨을 거뒀다.


자녀들, 재단 이사로 참여하기도

◆기부자들의 자녀들도 행복할까

기부자들의 삶이 각기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자녀들의 삶 또한 서로 달랐다. 특히 기금의 운영에 대해서는 자녀들마다 입장이 달랐다. 기부금을 출연한 재단의 운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재단의 이사로 운영에 참여하는 자녀도 있다.

‘김밥 할머니’로 널리 알려진 고(故) 이복순 씨는 1990년 11월 충남대학교에 50억원 상당의 땅을 기증했다. 이씨는 이듬해 8월 세상을 떠났다. 충남대는 이 땅을 기초로 이씨의 법명을 딴 ‘정심화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정심화 국제문화센터’를 짓기 시작했다.

이씨의 아들 임채훈(61)씨는 “어머니의 뜻대로 일단 출연한 이상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고, 학교에서 잘하리라고 믿었다”며 “대학에서는 몇 번이고 장학재단에 이사진으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고사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충남대는 ‘정심화 국제문화센터’에서 ‘정심화’를 떼어내려 했었다. 당시 학교 측은 “할머니의 기부로 시작된 공사이기는 하지만 국가 예산이 200억원 정도 들어간 만큼 할머니의 법명은 내부 대강당(정심화홀)에만 남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복순 할머니의 유가족들에겐 큰 충격이었다. 다행히 ‘기부의 취지를 퇴색시켜서는 안 된다’는 지역 사회와 학생들의 강한 반발로 학교 계획은 백지화됐다.

임씨는 “어머니의 유지로 시작한 사업인데 나중에 몫이 작아졌으니 떼어내겠다는 말을 듣게 되니 굉장히 서운했다”며 “이런 식으로 기부자를 대접하면 누가 기부를 하겠느냐”고 했다.


기부자 아들 "IMF땐 기부한 땅 생각 난 게 사실"

할머니가 기증한 50억원 상당의 땅. 아들은 그 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물어보았다.

“잠시 건설업에 손을 댔는데 IMF 당시 무척 힘들었죠. ‘만약 그 땅이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잠깐 나긴 하더군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 돈이 있었어도 제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겁니다.”

임씨는 “어머니께서도 자식이 살 만하니까 기부를 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대전역 근처의 시장에서 30년 가까이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임씨는 “아들이 충남대에 입학했는데 ‘학교에서 할머니 동상을 보니 할머니가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을 때 정말 가슴 뿌듯했다”라고 말했다.

기부 당시 개인 최고액 기부자였던 고(故) 강태원씨. 광복 후 평양에서 단신 월남해 포목상과 운수사업으로 돈을 모은 실향민 강태원 씨는 2002년 8월 KBS ‘사랑의 리퀘스트’를 통해 총 270억원(현금 200억원, 부동산 70억원)을 기부했다. 2001년에는 음성 꽃동네에 100억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기부하기도 했다. KBS와 유가족은 강씨가 기부한 270억원을 바탕으로 ‘KBS강태원복지재단’을 설립했다. 현재 그의 셋째 딸 강혜련(45·경기대 교수)씨가 재단 이사로 재단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딸 강씨는 “기부자나 가족이 전문가는 아닌 만큼 세부적인 부분은 여러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야 하지만, 기부금이 기부자의 뜻에 맞게 쓰이는지 알아야 한다”며 “이를 통해 기부자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이런 마음이 또 다른 기부로 이어진다”고 했다.


"이제 할 일 다 했다" 입버릇처럼 말해

강씨는 기부 문화가 널리 퍼지기 위해서는 기부자가 ‘기부의 감동’을 직접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2005년 강씨도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장애인들의 치료를 위해 1000만원을 기부했다. 기부금은 강씨가 직접 선정한 장애인 8명의 개안 수술에 쓰였다. 반년 후, 그 중 한 명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시각 장애와 정신 지체를 지닌 남학생이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앞이 안 보였는데, 수술받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살게요”라고 적혀 있었다. 강씨는 “그때서야 아버지가 어떤 기분이셨을지 알 것 같았다”며 “그 편지가 내게는 ‘1000만원짜리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액의 기부에는 예상치 못한 고통이 뒤따랐다. 270억원 기부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강씨 가족들은 “우리도 도와달라”는 부탁에 시달려야 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집 앞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바람에 집에 들어가지 못한 적도 많았다. 강씨는 이에 대해 “부모님들은 기부 이후 한동안 도망자 생활을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2003년 7월 강태원 씨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가족들의 고통은 계속됐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랬어요. 아버지가 270억원을 기부했으면 가족들한테도 얼마 정도 남겨줬을 것 아니냐고. 아무리 없다고 설명을 해도 끝이 없었어요.”

기부자들 중 상당수는 강씨와 같은 피해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본인의 기부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취재를 통해 만난 기부자들은 한결같이 “기부 후 너도나도 찾아와 도와달라고 매달려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수의 기부자들은 재단이나 학교를 통해 인터뷰 약속을 잡으려 해도 “더 이상 언론에 얼굴을 내밀고 싶지 않다” 또는 “그냥 기부 이전처럼 조용히 지내고 싶다”고만 했다. 이에 대해 가톨릭학원 법인사무처 이민영 과장은 “처음 기부를 할 때는 언론 취재에 응했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이제 더 이상 할 말은 없다’며 인터뷰를 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1억 이상 기부자 68%가 60~80대 할머니, 왜?


가족 없이 홀로 억척스럽게 돈 모은 사람 많아
여성이 다른 사람 아픔 공감하는 능력 뛰어나

97년 1월부터 10년 동안 본지에 보도 된 1억원 이상 개인 기부자(기업인 제외)는 모두 25명. 그 중 68%인 17명이 60~80대 여성이었다. 개인 기부의 3분의 2 가량은 ‘할머니’의 평생 재산이 사회로 환원된 것이다. 왜 거액 기부자 중에 할머니가 더 많은 걸까.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남성의 기부도 적지 않지만 기업 대표로서 기부를 하는 것이 많은 편”이라며 “이에 비해 여성들은 외부로부터 요청이 없더라도 자신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기부를 하는 성향을 보이며, 어렵게 살아온 할머니들의 기부는 특히 언론에 많이 노출된다”고 했다. 곽 교수는 “여성이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라고 했다.

한국복지재단의 김창환 경영기획팀장은 “기부자들 중에는 힘들고 가난하게 산 기억을 간직한 분들이 많다”며 “특히 일가친척이나 가족이 없는 할머니들 중 홀로 억척스럽게 돈을 모은 이들이 돌아가시기 전 기부를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서울대발전기금 김성윤 실장도 “작년 미국 통계를 봐도 사람들이 기부를 결정할 때 자녀의 유무, 자녀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게 나타났다”며 “할아버지와 비교해 할머니들이 재혼을 하지 않고 한평생을 아끼고 절약하는 사람이 많아 훗날 이들의 재산이 개인 기부로 이어진다”고 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수명이 길기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남편을 먼저 잃은 여성이 자식들을 독립시킨 후에 남은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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