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진목사(평안밀알선교단/복지재단, 세븐앤투웰브 대표이사)
요나라는 선지자가 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악독이 하늘까지 다다른 앗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라는 성에 가서 그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선포를 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서 니느웨로 가는 길의 전혀 반대 방향인 다시스라는 곳으로 향해가서 배를 타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도망친다. 요나는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는 니느웨 도성이 만약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도망친 것이었다.
그런데 성경의 요나서를 보면 재미있는 광경이 나온다.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떠난 요나가 탄 배가 거친 풍랑을 만나서 파선하게 된다. 그 때 요나는 이방인들에게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서 배를 타고 도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풍랑을 만나게 하셨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자신을 바다에 던져 넣으면 풍랑이 그칠 것이라는 고백을 한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이방인들의 행동은 너무나도 뜻밖이었다. 그들은 처음 만나서 잘 알지도 못하는 요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풍랑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냥 요나만 바다에 던져 넣으면 풍랑이 그치고 자신들이 가지고 가던 모든 재산들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배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모든 재산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만다.
성경은 요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지자였던 요나는 니느웨 성에 사는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해서 무관심한 반면에 이방인들은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 자신의 것들을 모두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대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교회들이 세상 속에서 기쁜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여지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모인 이기적인 집단처럼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같다. 교회는 교회다움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가장 악해 보이는 것까지도 선함으로 이기며, 그들의 영혼을 긍휼하게 여기는 곳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면서 천국의 열쇠를 주시고,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향하여 교회가 음부의 권세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교회는 아무리 악함이 꽃피우는 곳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십자가 정신을 가지고 세상을 바꿔왔다.
그런데 어는 순간부터 교회는 세상의 어두운 곳과 연약한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단체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오히려 교회보다는 세상의 일반 봉사단체들이 과거 교회가 서 있었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내가 신학을 공부하던 30년 전에 신학생들이 가장 관심이 많았었던 주제 중에 하나가 ‘교회가 성도들을 믿음이란 이름으로 교회에만 가두어 두는 것’이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 안에만 머물다가 보니 죄와 악이 가득한 세상에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성도들을 세우지 못하는 교회에 대한 자조 섞인 말이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는 좋은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요나처럼 자기만의 의에 빠져서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을 향한 긍휼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가끔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착한 사람들만큼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에게 과한 것은 아닌 듯하다. ‘나는 구원받아서 천국 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기적인 신앙에서 성숙해서 온 세상의 아픔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것들을 희생해서라도 요나를 구하려고 노력했었던 이방인들의 수고를 닮는 성숙한 삶을 살아내 보기를 응원한다.
한덕진목사(평안밀알선교단/복지재단, 세븐앤투웰브 대표이사)
요나라는 선지자가 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악독이 하늘까지 다다른 앗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라는 성에 가서 그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선포를 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서 니느웨로 가는 길의 전혀 반대 방향인 다시스라는 곳으로 향해가서 배를 타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도망친다. 요나는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는 니느웨 도성이 만약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도망친 것이었다.
그런데 성경의 요나서를 보면 재미있는 광경이 나온다.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떠난 요나가 탄 배가 거친 풍랑을 만나서 파선하게 된다. 그 때 요나는 이방인들에게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서 배를 타고 도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풍랑을 만나게 하셨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자신을 바다에 던져 넣으면 풍랑이 그칠 것이라는 고백을 한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이방인들의 행동은 너무나도 뜻밖이었다. 그들은 처음 만나서 잘 알지도 못하는 요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풍랑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냥 요나만 바다에 던져 넣으면 풍랑이 그치고 자신들이 가지고 가던 모든 재산들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배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모든 재산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만다.
성경은 요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지자였던 요나는 니느웨 성에 사는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해서 무관심한 반면에 이방인들은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 자신의 것들을 모두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대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교회들이 세상 속에서 기쁜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여지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모인 이기적인 집단처럼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같다. 교회는 교회다움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가장 악해 보이는 것까지도 선함으로 이기며, 그들의 영혼을 긍휼하게 여기는 곳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면서 천국의 열쇠를 주시고,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향하여 교회가 음부의 권세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교회는 아무리 악함이 꽃피우는 곳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십자가 정신을 가지고 세상을 바꿔왔다.
그런데 어는 순간부터 교회는 세상의 어두운 곳과 연약한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단체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오히려 교회보다는 세상의 일반 봉사단체들이 과거 교회가 서 있었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내가 신학을 공부하던 30년 전에 신학생들이 가장 관심이 많았었던 주제 중에 하나가 ‘교회가 성도들을 믿음이란 이름으로 교회에만 가두어 두는 것’이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 안에만 머물다가 보니 죄와 악이 가득한 세상에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성도들을 세우지 못하는 교회에 대한 자조 섞인 말이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는 좋은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요나처럼 자기만의 의에 빠져서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을 향한 긍휼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가끔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착한 사람들만큼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에게 과한 것은 아닌 듯하다. ‘나는 구원받아서 천국 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기적인 신앙에서 성숙해서 온 세상의 아픔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것들을 희생해서라도 요나를 구하려고 노력했었던 이방인들의 수고를 닮는 성숙한 삶을 살아내 보기를 응원한다.